원어: Visby
분류: 스웨덴의 도시
비스비 (Visby, 스웨덴어 발음: 비스뷔)는 스웨덴 고틀란드 (Gotland)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고틀란드 렌 (Gotlands län)의 행정 중심지이자 레지던스 도시입니다. 또한 비스비 교구 (Visby stift)의 주교 소재지이기도 합니다. 2024년 2월 7일 기준, 약 26,000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비스비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장미와 폐허의 도시"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비스비라는 지명은 "이교도 제물 장소"를 의미하는 “vi” (비*)와 "도시"를 의미하는 “by” (뷔*)의 합성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230년경에 쓰여진 《고타사가 (Gutasagan)》에서는 이 도시를 “Wi” (위*)라고 불렀으며, 이는 "성스러운 장소, 제례 장소"를 의미합니다.
비스비의 역사는 700~900년대에 해안가에 존재했던 “strandbodar” (해안 창고)로 추정되는 유적에서 시작됩니다. 바이킹 시대에는 비스비 주변에 여러 항구가 있었으며, 그 중 하나는 현재의 비스비에서 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코파르스비크 (Kopparsvik, 콥파르스비크)에, 다른 하나는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구스타브스비크 (Gustavsvik, 구스타브스비크)에 위치했습니다. 1000년대 중반 경에는 비스비에 영구적인 거주지가 생겨났습니다.
《고타사가》에 따르면, 고틀란드의 첫 번째 교회인 알헬고나교회 (Allhelgonakyrkan, 알헬고나키르칸)가 세워졌으며, 이는 후에 성 페르 교회 (S:t Per)가 건설된 자리입니다. 비스비는 처음에는 여러 장소 중 하나였지만, 곧 고틀란드를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1140년경에는 고틀란드에서 자체적으로 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하며 그 중요성을 더했습니다. 1158년에서 1161년 사이에는 비스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크루토르네트 (Kruttornet, 크루토르네트, 화약탑)가 건설되었습니다.
1100년대에는 스웨덴, 덴마크, 러시아의 통치자들과의 무역 협정을 통해 비스비의 성장이 가속화되었습니다. 1161년에는 고틀란드 상인들이 작센 공국의 하인리히 사자공 (Henrik Lejonet, 헨리크 레요네트)과 조약을 맺어 작센 지역에서 광범위한 자유 무역 권리를 얻었습니다. 1200년경에는 경제적 중심지였던 롤란드스토리에 (Rolandstorget, 롤란드스토리에)가 건설되었습니다.
1203년에는 비스비가 문서에 처음 등장합니다. 리보니아 (Livland, 리블란드)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비스비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기록에서 비스비는 “civitas” (시비타스, 대도시)로 언급되었습니다. 1231년경에는 독일과 고틀란드 출신으로 구성된 비스비 의회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다른 북유럽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1200년대에는 비스비가 한자동맹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비스비의 인구 중 일부는 독일인이었지만, 역사 기록에서 독일인의 영향력이 과장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고틀란드 출신들이 도시의 주요 세력이었으며, 러시아 무역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했습니다. 비스비의 고틀란드 상인들은 서부 해역 무역을 주도했으며, 1300년대 말까지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에서 활동하는 비스비 상인들의 절반이 고틀란드 출신이었습니다.
1288년에는 도시와 농촌 간의 내전이 발생했습니다. 이 내전은 상업적 갈등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요인에 기인했습니다. 비스비는 1270년경에 방어 목적으로 성벽을 건설했는데, 이는 농민들의 동의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285년, 비스비 시민들이 국왕 마그누스 라둘로스 (Magnus Ladulås, 마그누스 라둘로스)의 세금 인상 요구에 반대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농민들은 도시 내에 감시원을 배치했고, 이에 반발한 시민들은 농민들의 상업 활동에 대한 통행세를 부과했습니다. 이로 인해 농민들이 공격을 감행했고, 국왕은 도시의 편을 들어 내전을 종식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비스비 성벽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스비는 스웨덴에서 중세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 중 하나로, 스웨덴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한자동맹 시대의 유산을 통해 스웨덴의 상업적, 문화적 교류를 엿볼 수 있습니다.
비스비는 한국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적지만, 중세 시대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시입니다. 특히, 한자동맹과 관련된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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