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Venedig
분류: 영화제
베네치아 (Venedig)는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118개의 섬과 400개 이상의 다리로 연결된 독특한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석호 (Venediglagunen)에 위치하며, 좁은 수로와 곤돌라 (gondol)로 유명합니다. 역사적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으며, 예술, 건축, 문화적으로 중요한 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역사적인 중심지는 베네치아 석호의 여러 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석호는 아드리아 해 (Adriatiska havet)로 흘러드는 포 강 (Po) 하구에서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주요 섬으로는 대운하 (Canal Grande)로 나뉜 본섬과 주데카 섬 (La Giudecca)이 있으며, 주데카 섬은 Canale della Giudecca에 의해 본섬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본토에는 메스트레 (Mestre)와 마르게라 (Marghera)가 있으며, 이들은 베네치아 시 (하지만 베네치아 시는 아님)에 행정적으로 속해 있습니다. 리도 (Lido)와 토르첼로 (Torcello), 무라노 (Murano), 부라노 (Burano), 산트 에라스모 (Sant’Erasmo), 비뇰레 (Vignole) 등의 섬들도 베네치아에 속합니다. 석호 주변에는 키오자 (Chioggia)와 같은 다른 도시들이 있으며, 키오자는 "작은 베네치아"라는 별칭을 가진 독립적인 코뮌입니다.
베네치아는 물 위에 세워진 도시로, 수백만 개의 참나무와 느릅나무로 만든 나무 말뚝을 모래와 진흙 땅에 박아 건설되었습니다.
베네치아는 6개의 구역 (sestieri)과 주변 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구역들은 곤돌라의 머리 부분에 상징적으로 나타나며, 도제의 머리 장식과 함께 묘사됩니다. 6개의 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네치아는 후기 고대 시대 (antiken)에 석호의 섬들에 흩어져 있던 정착지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살았던 베네토인 (veneter)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도시는 452년 훈족 (hunner)의 침략과 568년 랑고바르드족 (langobarder)의 침략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은 북부 이탈리아의 난민들에 의해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도시 이름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덜 유력한) 이야기는 훈족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은 난민들이 “Veni etiam” (“나 또한 여기에 왔다”)라고 인사했다는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토르첼로 (Torcello) 도시의 정치적 후계자가 되었는데, 토르첼로는 중요한 주교 도시였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주민들이 베네치아로 이주하면서 버려졌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전초 기지로서, 베네치아인들은 프랑크 왕국 (Frankerriket)과 신성 로마 제국 (heliga romerska riket)에 맞서 북부 이탈리아의 다른 모든 도시들과는 달리 자치권을 유지했습니다. 비잔틴의 영향은 산 마르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Marco)과 같은 많은 건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비잔틴이 랑고바르드족, 프랑크족, 슬라브족, 아바르족, 페르시아인, 아랍인들의 침략으로 인해 전초 기지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익을 얻었습니다. 대신 베네치아는 제국들을 서로 이용하며 서유럽과 비잔틴 사이의 무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 초기에 베네치아 귀족들은 무역 특권 덕분에 주도적인 지위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14세기에 본토로 확장된 베네치아 공화국이 형성되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korståg)과 비잔틴 수도에서도 나타난 무역 특권의 결과로 베네치아인과 비잔틴인 사이의 적대감이 증가했습니다.
제4차 십자군 전쟁 (fjärde korståget) 동안 도제 엔리코 단돌로 (Enrico Dandolo)는 1204년 콘스탄티노플 (Konstantinopel)을 공격하여 점령했습니다. 새로 형성된 라틴 제국은 베네치아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약탈된 많은 예술품들이 비잔틴에서 서방으로 옮겨졌는데, 예를 들어 현재 스톡홀름의 블라시에홀름 광장 (Blasieholmstorg)에 있는 청동 4두 마차 (quadriga)가 있습니다. 이 쿠데타는 동유럽, 특히 러시아의 정교회 (ortodoxa) 민족들이 서유럽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으며, 제노바 공화국 (republiken Genua)과의 오랜 갈등으로 이어져 4번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끝났습니다. 이 마지막 전쟁에서 제노바인들은 1381년 석호 남쪽에 위치한 키오자를 점령했지만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제노바가 흑해 (Svarta havet)로 가는 무역을 장악한 반면, 베네치아는 레반트 (Levanten)와의 무역을 유지했습니다. 키프로스 (Cypern)의 마지막 왕인 야코보 2세 (Jakob II)와 카테리나 코르나로 (Caterina Cornaro)의 결혼을 통해 왕과 그의 후계자가 사망한 후 키프로스는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피아잘레 로마 (Piazzale Roma)의 회전 구역을 제외하고는 자동차 통행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도보로 이동하거나, 개인 보트, 곤돌라, 보트 택시, 트라게토 (traghetto), 바포레토 (vaporetto)를 이용합니다. 걷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거리가 좁고 울퉁불퉁하며, 많은 계단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때때로 발생하는 극심한 고조 (högvatten)는 이동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2003년에는 홍수 방지 장벽인 MOSE 프로젝트 (MO.S.E.)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모차는 베네치아에서 드물며,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바포레토에 쉽게 탑승하기 위해 종종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시 중심부에는 장애인을 위한 약간의 편의 시설이 있습니다. 주요 간선 도로의 계단 다리에는 유모차와 휠체어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이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트를 타는 것입니다. 가장 흔한 교통 수단은 바포레토로, 베네치아 주변과 대운하를 통과하는 여러 노선이 있으며, 주변 섬으로도 운행됩니다. 곤돌라를 타는 것은 베네치아를 가로지르는 작은 운하를 이동하는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가격 때문에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다리가 없는 대운하에서는 서서 타는 간단하고 저렴한 종류의 곤돌라인 트라게토가 사용됩니다. 베네치아에는 택시 보트도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정착민들은 종종 작은 트라게토와 비슷한 개인 보트를 가지고 있으며, 선미에서 서서 노를 젓습니다. 화물 운송은 보트로 이루어지며, 시의 유지 보수 및 쓰레기 수거, 경찰, 소방서, 구급대원도 보트를 이용하여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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