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Trångsund
분류: 후딩에에 위치한 지역
트롱순 (Trångsund)은 스웨덴 후딩에 (Huddinge) 시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좁은 해협을 의미하는 스웨덴어 "Trångsund"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특히 1700년대에는 문화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는 주거 지역으로 발전했으며, 다양한 편의 시설과 함께 스톡홀름 (Stockholm)과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입니다.
트롱순의 이름은 인근 드레브비켄 (Drevviken)의 좁은 해협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636년의 지적부 (jordebok)에 따르면, 트롱순은 렌나 고르드 (Länna gård)에 속한 "trånge sundh"라는 농가 (torp)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1685년에는 “필요한 집들로 잘 갖춰진” 농가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농가는 점차 작은 영지로 발전했습니다.
1762년에는 건축가 칼 프레드릭 아델크란츠가 트롱순스 고르드의 소유주가 되어 새로운 저택을 건설했습니다. 아델크란츠는 많은 가난한 친척과 친구들을 돌보았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1789년 친구인 요한 헨릭 샤르프 (Johan Henrik Scharp)에게 트롱순을 매각해야 했습니다. 1903년에는 구스타프 노르드스트룀 (Gustaf Nordström)에게, 1911년에는 크리스티안 로벤 (Christian Lovén) 대령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습니다. 1936년부터는 딩켈스피엘 (Dinkelspiel) 가문이 소유하고 있으며, 울프 딩켈스피엘 (Ulf Dinkelspiel)의 어린 시절 집이었습니다.
1700년대 중반에는 부유한 스톡홀름 시민들이 별장 (sommarnöjen)을 건설하면서 팔란 (Fållan) 지역이 중요해졌습니다. 시인 칼 마이클 벨만 (Carl Michael Bellman)은 1773년 여름을 이곳에서 보내며 23편의 시를 썼습니다. 벨만은 "Bellmanslindarna"라는 이름의 네 그루의 보리수 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팔란은 1960년대 말, 뉘네스베겐 (Nynäsvägen) 고속도로 건설 계획에 대한 반대 시위로도 유명해졌습니다.
1900년대 초, 트롱순에는 몇 채의 집만 있었지만, 1901년 뉘네스반 (Nynäsbanan) 철도역이 건설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었지만, 192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건축 활동이 증가했으며, 스토르토르프 (Stortorp) 지역에는 600개 이상의 부지가 조성되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시에서 트롱순 역 북쪽과 동쪽의 토지를 매입하여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습니다. 1958년에는 도시 계획이 확정되었고, 1960년대 초에는 아파트와 주택 건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1957년에는 트롱순 교회 (Tacksägelsekyrkan)가 완공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상업 시설과 사회 서비스가 갖춰진 트롱순 중심가가 형성되었습니다.
1964년에는 스웨덴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인 오게스타베르케트 (Ågestaverket)가 가동되어 1974년까지 운영되었습니다. 이 발전소는 파르스타 (Farsta) 지역에 지역 난방을 공급했으며, 전력을 생산하여 전력망에 공급했습니다. 현재는 스톡홀름 소방서의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트롱순은 스톡홀름 근교의 주거 지역으로, 스톡홀름과의 접근성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문화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현재는 현대적인 편의 시설과 주거 환경을 갖춘 지역으로 발전했습니다.
트롱순은 한국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적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주거 문화와 도시 개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지역으로서, 한국의 도시 계획 및 주거 환경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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