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Södermalmstorg
분류: 스톡홀름의 광장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 (Södermalmstorg, 쇠데르말름 광장)는 스톡홀름의 슬루센 (Slussen) 지역에 위치한 광장으로,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 중 하나입니다. 1700년대에 명칭이 정해졌으며, 현재는 대중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는 중세 시대부터 존재했던 불규칙한 형태의 광장인 "말름토리에트 (Malmtorget)"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637년부터 1639년 사이에 돌로 포장되었으며, 한때 처형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641년부터 시작된 쇠데르말름의 도시 계획에 따라 광장의 형태가 정비되었습니다.
1662년에는 예르토리에트 (Järntorget, 철광장)에 있던 철물 취급소와 스톡홀름 철물 저울이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 근처의 예른그라벤 (Järngraven, 철 도랑)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또한, 국제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쇠드라 스타드스후세트 (Södra stadshuset, 남부 시청)가 근처에 건설되면서, 200년 이상 스웨덴의 철 수출이 이 지역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1700년대에는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라는 명칭이 일반화되었으며, 1733년 틸레우스 (Tillaeus) 지도에는 노르말름 (Norrmalm)에도 "말름토르그"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1771년에는 광장 남동쪽에 있던 우물에서 이름을 따온 "쇠데르말름스 토르그-브룬 (Södermalms Torg-Brunn)"이 등장했으며, 1789년에는 "쇠데르말름스 브룬스바케 (Södermalms brunsbacke)"로 불리다가 1935년에 이 명칭은 사라졌습니다.
1640년대에 건설된 요한 스튑테의 집 (Johan Skyttes hus)은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 4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759년 마리아 화재 (Mariabranden) 이후 부분적으로 재건되었고, 안데르스 조른 (Anders Zorn)의 아틀리에가 1913년부터 1920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에베르트 토베 (Evert Taube)가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습니다.
1889년부터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에는 노면 전차 (spårvägstrafik)가 운행되었으며, 1933년부터는 교외 노선의 회차 지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슬루센 재건축 이전에는 칼 요한스 토르그 (Karl Johans torg)가 회차 지점이었으며, 1933년부터 1950년까지는 엔스케데반안 (Enskedebanan)과 외르비반안 (Örbybanan)의 회차 지점으로, 슬루센 재건축 이후 1964년까지는 멜라르회이덴 (Mälarhöjden)과 프루엔겐 (Fruängen)으로 가는 노선의 회차 지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013년 가을, 슬루센 프로젝트 (projekt Slussen)의 준비 작업 중 스톡홀름 시립 박물관 북쪽 건물 밖에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도로면보다 여러 미터 아래에서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도자기 조각, 점토 파이프, 그리고 1700년대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의 우물로 이어지는 브룬스바케 (Brunnsbacken)의 자갈 포장 도로가 포함되었습니다.
발굴된 자갈 포장 도로는 요한 세븐봄 (Johan Sevenbom)의 1770년대 그림 "브룬스바케에서 살트쇼를 바라본 풍경 (Utsikt från Brunnsbacken över Saltsjön)"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브룬스바케 유적 아래에는 스톡홀름 중세 시대의 도로망의 일부인 더 오래된 도로 포장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는 스톡홀름의 역사적인 중심지 중 하나로, 과거에는 철 수출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대중교통의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톡홀름 시립 박물관이 위치해 있어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쇠데르말름스토리에트는 한국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적지만, 스웨덴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소입니다. 스톡홀름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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