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Skellefteå
분류: 스웨덴 북부 도시
스웨덴 북부 베스테르보텐주에 위치한 도시인 셸레프테오 (Skellefteå)는 때때로 "굴드스타덴 (Guldstaden, 황금 도시)"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볼리덴 AB (Boliden AB)의 오랜 광산 활동과 세계에서 가장 광물이 풍부한 지역 중 하나인 셸레프테펠테트 (Skelleftefältet) 때문입니다. 셸레프테오 시가 전액 출자한 전력 회사인 셸레프테오 크라프트 (Skellefteå Kraft)는 바텐팔 AB (Vattenfall AB)에 이어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스웨덴 소유 전력 회사입니다. 아이스하키 팀인 셸레프테오 AIK (Skellefteå AIK)와 트레스타크페스티발렌 (Trästockfestivalen)과 같은 음악 및 스포츠 활동은 이 도시의 현대사를 특징짓는 요소입니다. 2017년부터 셸레프테오는 노르트볼트 (Northvolt)의 첫 번째 배터리 공장이 들어선 곳이기도 합니다.
셸레프테오라는 지명은 1327년에 '스켈레프트 (Skelepht)'로 기록되었으나, 그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이름은 지역의 강 이름(셸레프테엘벤 (Skellefteälven))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도시와 강 이름 모두 초기 사미어 (samiska)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셸레프테엘벤의 가장 상류 부분은 시엘두트바게 (Sieldutvagge) 계곡의 시엘두트요크 (Sieldutjokk)입니다.
남부 사미어 (sydsamiska)로는 이 도시를 ‘스킬레흐테 (Skillehte)’ 또는 '쉬엘데테 (Syöldete)'라고 부르며, 우메 사미어 (umesamiska)로는 '쉬엘다테 (Syöldate)'라고 합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흔히 사용되는 애칭은 '스탄 (Stan)'입니다. 지역 방언(셸레프테본스카 (Skelleftebondska))으로는 ‘셸레트 (Sch’ället)’ 또는 '셸레트 (Schélet)'라고 합니다. 오래된 핀란드어 이름은 '헬레티 (Heletti)'이며, 올라우스 망누스 (Olaus Magnus)의 지도 카르타 마리나 (Carta marina)에서는 '스켈리타 (Skellitta)'라고 불렸습니다.
도시의 현재 중심부 근처에 위치한 문화 및 야외 활동 구역인 노르다노 (Nordanå)는 옛 해안 도로변에 자리한 교회 마을과 시장터를 포함하는 국가지정 중요 지역인 셸레프테오 소켄센트룸 (Skellefteå sockencentrum)의 일부입니다. 이곳에서는 중세 시대 (medeltiden)부터 이 지역의 교회, 사회, 상업 생활에 대한 중요성이 이야기됩니다. 또한 인델닝스베르케트 (indelningsverket, 스웨덴의 옛 군사 조직 체계) 시대의 국방 조직 및 훈련도 이 지역 내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국가지정 중요 지역 내에는 마요르스보스텔레트 뉘보리 (majorsbostället Nyborg), 본스탄 (Bonnstan), 리브레보덴 (Livréboden), 예이욘스트룀스브론 (Lejonströmsbron)과 같은 여러 법적으로 보호받는 건축 기념물들이 있습니다.
기원전 약 6000년경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음이 확인되었으며, 여러 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 유물도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5200년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키인 칼브트레스크시단 (Kalvträskskidan)과 같은 선사 시대 스키도 발견되었습니다. 셸레프테오 소켄 (Skellefteå socken, 교구)이 설립된 1300년대부터는 문헌 기록이 존재하며, 1419년에는 교구에 60가구가 있었고, 1543년에는 372가구로 늘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첫 번째 석조 교회가 세워졌는데, 그 성구실은 여전히 셸레프테오 란드스푀르삼링 (Skellefteå landsförsamling) 교회의 란드쉬르칸 (Landskyrkan)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1500년대와 1600년대에는 셸레프테오 소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당시 외예뷘 (Öjebyn)에 위치했던 피테오 (Piteå)가 1666년에 화재로 소실되자, 피테오의 시민들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도시는 자연적으로 깊은 항구를 가진 스토르크오예 (Storkåge) 마을 부지(현재의 코예 (Kåge) 지역)에 약 80km 남쪽으로 위치할 예정이었습니다. 칼 11세 (Karl XI) 국왕은 그의 어머니인 헤드비그 엘레오노라 아브 홀스테인-고토르프 (Hedvig Eleonora av Holstein-Gottorp) 왕비의 이름을 따 헤드비그스타드 (Hedvigstad)라고 불릴 새로운 도시에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피테오 시민들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꿔, 현재 위치인 해안에 더 가까운 약 10km 남쪽에 피테오를 재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피테오와 우메오 (Umeå) 사이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던 계획은 보류되었습니다.
스웨덴 대제국 시대 (stormaktstiden) 동안 대부분의 남성들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셸레프테오 콤파니 (Skellefteå kompani)는 두 번이나 완전히 전멸했습니다. 1700년대 초반, 이 지역의 느린 회복 과정에서 모든 병사들의 미망인들이 힘든 짐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1730년부터 1862년 사이에 대교구에 565개의 새로운 정착지가 지정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셸레프테뷔그덴 (skelleftebygden)은 1950년대까지 거의 변함없는 마을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목재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셸레프테엘벤 계곡에 도시를 형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습니다. 닐스 노를란데르 (Nils Nordlander) 교구 목사의 주도로 셸레프테오는 1845년 노르뵈레 뷔 (Norrböle by) 마을 부지에 설립되었습니다. 무역권을 가진 우메오와 피테오 시민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셸레프테오는 1845년에 도시 특권 (stadsprivilegier)을 획득했습니다.
셸레프테오는 현재 광업 및 전력 산업(볼리덴 AB, 셸레프테오 크라프트)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와 함께, 노르트볼트 배터리 공장 유치로 새로운 산업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스하키 팀 셸레프테오 AIK와 같은 스포츠 및 트레스타크페스티발렌과 같은 문화 행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도시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중세부터 중요한 교회 및 상업 중심지였으며, 노르다노 지역의 국가지정 중요 문화 유산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셸레프테오는 스웨덴 북부의 중요한 산업 도시로서, 특히 광업과 전력 생산 분야에서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굴드스타덴"이라는 별칭은 그 광물 자원의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셸레프테오 크라프트는 스웨덴 내 주요 전력 공급원 중 하나입니다. 또한 노르트볼트 공장은 스웨덴이 배터리 생산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려는 국가적 노력의 핵심 거점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북부 스웨덴의 정착 및 교구 발전 과정, 그리고 도시 설립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노르다노 지역은 스웨덴의 역사적 건축물 보존 및 문화 유산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국가지정 중요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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