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Norra Bantorget
분류: 스톡홀름의 광장
노라 반토리에 (Norra Bantorget, 북쪽 광장)는 스웨덴 스톡홀름 노르말름 (Norrmalm) 지역의 바사 가탄 (Vasagatan) 북쪽 끝에 위치한 광장 및 공원입니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시장이 열렸기 때문에 "광장"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1876년 현재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2009년에는 광장 재정비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노라 반토리에 지역은 반후스비켄 (Barnhusviken)으로 이어지는 정원이었습니다. 1630년대에는 클라스 라르손 플레밍 (Clas Larsson Fleming)이 알메나 반후세트 (Allmänna Barnhuset, 공공 보육원)를 세웠고, 이후에는 악명 높은 고문실인 로젠캄마렌 (Rosenkammaren)이 있는 뉘아 스메디예고르덴 (Nya smedjegården, 새로운 대장간) 감옥이 들어섰습니다. 1840년대에는 당시 현대적인 렌셀프렌겔세트 (Länscellfängelset, 지방 감옥)가 건설되었습니다.
1866년 노라 스탐바난 (Norra stambanan, 북부 간선 철도)의 종착역인 스톡홀름 노라 역이 개통되면서, 토지 매립을 통해 광장 부지가 조성되었습니다. 1867년 지도에는 스벤스카 트레고르스포레닝엔 (Svenska trädgårdsföreningen, 스웨덴 정원 협회) 부지에 "토르그 데세인 (Torg Dessein, 광장 디자인)"으로 계획된 광장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1871년 삼만빈드닝스바난 (Sammanbindningsbanan, 연결 철도)이 개통되면서 역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1893년에는 폴케 제테르발 (Folke Zettervall)이 설계한 붉은 벽돌 건물인 "스톡홀름 노라 엑스페디션스후스 (Stockholms norra expeditionshus, 스톡홀름 북부 사무소)"가 세워졌습니다. 이 건물은 1986년 국가 지정 건축 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현재는 광장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1870년대에는 철도 부지 동쪽에 광장이 조성되어 시장이 열렸고, "노라 반토리에"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클로칸 (Klockan) 구역이 형성되었고, 광장 남쪽에는 클라라가스베르케트 (Klaragasverket)의 가스 저장고가 있었습니다. 가스 저장고는 1912년에 철거되었지만, 그 기초는 콘서트홀 "오디토리움 (Auditorium)"으로 개조되었고, 나중에는 빈테르팔라세트 (Vinterpalatset, 겨울 궁전)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1900년경에는 공원이 조성되었고, 1904년에는 건축가 하그스트룀 & 에크만 (Hagström & Ekman)이 설계한 주택이 건설되었습니다. 1907년에는 스트린드베리 인티마 테아테르 (Strindbergs Intima Teater, 스트린드베리의 친밀한 극장)가 문을 열었습니다. 1930년대 후반에는 노라 반토리에 서쪽이 주차장과 버스 터미널로 사용되었으며, 홀게르 블롬 (Holger Blom)이 설계한 로툰단 (Rotundan) 터미널 건물이 있었습니다 (2006년 철거). 1970년대까지 노라 반토리에는 북쪽에서 들어오는 교통의 중요한 진입로였습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광장 서쪽, 철도 선로와 평행하게 새로운 건물들이 건설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플랫아이언 빌딩 (Flatiron Building, 뉴욕의 플랫아이언 빌딩을 본떠 만듦), 새로운 주택, 대형 호텔 클라리온 호텔 사인 (Clarion Hotel Sign), 상점 및 사무실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동시에 노라 반토리에는 뉘렌스 아르키텍트콘토르 (Nyréns Arkitektkontor)의 벵트 이슬링 (Bengt Isling)이 설계한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정비되었으며, 2009년 시에나프리세트 (Sienapriset) 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라 반토리에는 스웨덴 사회민주당 (Socialdemokraterna)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02년 4월 27일, 약 4만 명의 노동자들이 스톡홀름 거리를 행진하여 노라 반토리에와 바른후스 가탄 (Barnhusgatan)에 있는 노동 운동의 건물인 폴케테스 후스 (Folkets hus, 인민의 집)를 최종 목적지로 삼았습니다.
노라 반토리에 자체는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스웨덴의 사회 민주주의 역사와 노동 운동의 중요한 장소로서, 한국의 사회 운동과 노동 운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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