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Milano
분류: 유럽 증시
밀라노 (Milano)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Lombardiet)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광역 도시권 중 하나입니다. 롬바르디아의 주도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극장인 [[테아트로 알라 스칼라 (Teatro alla Scala)]]가 있는 문화 중심지입니다.
밀라노는 고대 켈트족에 의해 기원전 600년경에 건설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로마 시대에는 "메디오라눔 (Mediolanum)"으로 불리며 인수브레스 (Insubres) 족의 수도였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으나, 민족 대이동 시기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962년 오토 1세 (Otto I)의 대관식 이후, 밀라노는 이탈리아 왕국과 함께 신성 로마 제국에 속했습니다. 1100년대에는 롬바르드 동맹의 중심지로서 황제에 대항하여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1158년과 1162년 프리드리히 1세 (Fredrik Barbarossa)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1176년 레냐노 전투 (slaget vid Legnano)에서 롬바르드 동맹이 승리한 후, 1183년 콘스탄츠 조약 (fördraget i Konstanz)을 통해 자유 도시가 되었지만, 황제를 영주로 인정했습니다.
델라 토레 가문이 이끄는 구엘프당과 비스콘티 가문이 이끄는 기벨린당 간의 당파 싸움으로 인해 도시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비스콘티 가문은 황제의 지원을 받아 도시와 롬바르디아의 여러 도시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했고, 1395년에는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 (Gian Galeazzo Visconti)가 밀라노 공국을 세웠습니다. 1447년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 (Filippo Maria Visconti)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의 사위인 프란체스코 1세 스포르차 (Francesco I Sforza)가 밀라노 공작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499년에는 프랑스의 루이 12세 (Ludvig XII av Frankrike)가 밀라노를 점령했지만, 1512년 신성 동맹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잃었습니다. 프랑수아 1세 (Frans I)는 1515년에 다시 밀라노를 점령했지만, 1521년에 다시 잃었습니다.
1535년 스포르차 가문이 단절되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 (Karl V)는 밀라노 공국을 자신의 아들 필리프에게 주었고, 이후 스페인과 합병되었습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freden i Utrecht)과 1714년 라슈타트 조약 (freden i Rastatt)을 통해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고, 이후 만토바 공국과 함께 오스트리아 롬바르디아를 형성했습니다. 1735년 빈 조약 (freden i Wien)과 1743년 보름스 조약 (Fördraget i Worms)을 통해 일부 지역이 사르데냐 왕국에 편입되었습니다.
1796-1797년 나폴레옹 1세 (Napoleon I)가 북부 이탈리아를 점령한 후, 밀라노는 1797년 치살피나 공화국의 수도, 1802년 이탈리아 공화국의 수도, 1805년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814년 왕국이 해체되면서 사르데냐는 이전 영토 (8,260 km²)를 되찾았고, 오스트리아는 밀라노 공국의 나머지 지역 (21,585 km²)을 획득하여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을 형성했습니다.
1848년 이전 몇 년 동안 밀라노는 오스트리아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1848년 3월 18일부터 23일까지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요제프 라데츠키 (Josef Radetzky)의 지휘 하에 도시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8월 6일, 피에몬테인들이 도시를 포기하면서 라데츠키가 다시 밀라노를 점령했습니다. 망명자들의 재산 몰수, 많은 처형, 가혹한 세금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인에 대한 증오가 커졌습니다. 1853년 2월 6일 주세페 마치니 (Giuseppe Mazzini)가 준비한 반란은 쉽게 진압되었습니다.
1859년 6월 4일 마젠타 전투 (slaget vid Magenta) 이후, 오스트리아군은 도시를 떠났고, 6월 8일 나폴레옹 3세 (Napoleon III)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Viktor Emanuel II)가 밀라노에 입성했습니다. 1859년 7월 12일 빌라프란카 예비 평화 조약 (fredspreliminärerna i Villafranca)에서 밀라노를 포함한 롬바르디아는 나폴레옹에게 양도되었고, 나폴레옹은 즉시 사르데냐에 넘겼습니다.
1919년 무솔리니 (Mussolini)는 밀라노에서 파시스트 운동을 시작했고, 로마로의 행진도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에 의해 심하게 폭격되었고, 1945년에는 미군이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당시 저항 운동이 도시를 장악하고 무솔리니와 다른 파시스트 지도자들을 처형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경제 호황이 이어지면서 밀라노로의 인구 유입이 증가했습니다. 도시는 재건되었고, [[피렐리 고층 빌딩 (Pirellihöghuset)]]과 같은 새로운 랜드마크가 생겨났습니다.
스웨덴에서는 밀라노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이자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는 점이 중요하게 인식됩니다. 특히 패션, 디자인, 오페라와 같은 분야에서 밀라노의 역할과 영향력이 강조됩니다.
밀라노는 한국인들에게도 패션, 디자인, 예술, 축구 (AC 밀란, 인터 밀란) 등으로 잘 알려진 도시입니다. 밀라노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 중 하나이며, 한국의 기업들이 진출하여 활동하는 경제적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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