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Liljeholmsbron
분류: 스톡홀름의 도로
릴리에홀름스브론 (Liljeholmsbron, 릴리에홀름 다리)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다리로, 릴리에홀름스비켄 (Liljeholmsviken, 릴리에홀름 만)을 가로지릅니다. 이 다리는 여러 차례 개축되었으며, 현재는 차량, 대중교통, 자전거, 보행자 모두 이용 가능한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합니다.
1660년대에 최초의 다리가 건설되었으며, 1928년에는 릴리에홀름스비켄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개폐교가 완공되었습니다. 이 다리는 함마르비레덴 (Hammarbyleden)으로 불리는 대규모 기반 시설 프로젝트의 일부였으며, 단빅스브론 (Danviksbron, 단빅 다리, 1922년 완공)과 스칸스브론 (Skansbron, 스칸스 다리, 1925년 완공)을 포함했습니다. 또한, 고가교인 오스타브론 (Årstabron, 오스타 다리, 1929년 완공), 함마르비 슬루스 (Hammarby sluss, 함마르비 갑문), 단빅스카날렌 (Danvikskanalen, 단빅 운하, 1930년 완공)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선박 교통량을 닐스 에릭손 슬루스 (Nils Ericsons sluss, 닐스 에릭손 갑문)에서 함마르비레덴으로 분산시켜, 서부 간선 철도 (västra stambanan)를 스톡홀름 쇠드라 역 (Stockholms södra station, 스톡홀름 남부역)까지 고가교로 연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660년대에는 호른스크로켄 (Hornskroken)에서 호른스툴 (Hornstull)과 릴리에홀름스비켄까지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었고, 이에 따라 릴리에홀름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건설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잦은 기상 악화로 인해 페리 서비스가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1668년 11월 4일, 국왕의 칙령에 따라 시는 다리를 건설하고 통행료를 징수할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 초기 다리: 1669년, 당시 도시 건축가 (후에 궁전 건축가) 니코데무스 테신 데 (Nicodemus Tessin d.ä., 니코데무스 테신 시니어)와 도시 건설 책임자 시프베르트 (Sifvert)의 지휘 아래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다리 건설 비용은 8,747 달러 (daler silvermynt, 은화)였습니다. 1669년 5월 18일, 세 명의 시민과 다리 포장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다리는 말뚝 다리 (pålbro)로, 말뚝을 바닥에 박고 그 위에 다리를 건설했습니다. 다리는 처음에는 호른스브론 (Hornsbron, 호른 다리)으로 불렸지만, 곧 릴리에홀름스브론 (Liljeholmsbron, 릴리에홀름 다리)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1733년부터 이 이름이 사용됨). 릴리에홀름스비켄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스톡홀름에서 피티아 브로 (Fittja Bro)를 거쳐 쇠데르텔리에 (Södertälje, 쇠데르텔리에)로 이어지는 새로운 간선 도로 건설 프로젝트의 일부였습니다. 1669년, 에릭 달베르 (Erik Dahlbergh)의 요새 건설 부대에 의해 새로운 도로 구간이 완전히 완공되었습니다 (쇠데르텔리에바겐 (Södertäljevägen, 쇠데르텔리에 도로) 참조).
- 부교: 말뚝 다리는 곧 부교 (flottbro)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부교는 여러 번 갱신되고 개선되었습니다. 1890년, 마지막 부교가 설치되었으며, 당시 길이는 164미터, 너비는 8.3미터였습니다. 이 부교는 현재 릴리에홀름바데트 (Liljeholmsbadet, 릴리에홀름 수영장) 근처의 베르그순드스 스트란드 (Bergsunds strand)에서 릴리에홀름스 스트란드 (Liljeholmsstranden, 릴리에홀름 해변)까지 이어졌으며, 당시 감라 쇠데르텔리에바겐 (Gamla Södertäljevägen, 옛 쇠데르텔리에 도로, 현재 릴리에홀름스바겐 (Liljeholmsvägen, 릴리에홀름 도로))을 따라 연결되었습니다.
- 철도 다리: 1860년, 서부 간선 철도가 스톡홀름 쇠드라 (Södra, 남부) 역까지 연장되면서, 오스타비켄 (Årstaviken, 오스타만)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철도 연결이 건설되었습니다. 낮은 철도 제방이 건설되었고, 만 위에는 회전교 (svängbro)가 설치되었습니다. 제방은 현재 릴리에홀름스브론이 위치한 지점과 거의 같은 지점인 오스타비켄 서쪽으로 연장되었습니다. 철도 다리의 일부 기초는 여전히 릴리에홀름스브론의 남쪽 교각 근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전차 다리: 1887년부터 호른스가탄 (Hornsgatan, 호른스가탄)에는 증기 전차가 운행되었고, 1901년에는 호른스툴까지 전차선이 전철화되었습니다. 1911년부터는 릴리에홀름스브론의 릴리에홀름 쪽에서 멜라르회이덴 (Mälarhöjden, 멜라르회이덴)과 미드솜마르크란센 (Midsommarkransen, 미드솜마르크란센)까지 전차가 운행되었습니다 (사설 전차 회사 AB 쇠드라 푀르스타드스바난 (AB Södra Förstadsbanan) 운영, 1920년 시영 스톡홀름 스파르베가르 (Stockholms Spårvägar, 스톡홀름 전차)에 매각). 호른스툴과 릴리에홀름 사이의 유일한 연결은 여전히 부교였으며, 이를 통해 이동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다리 건설은 모든 승객에게 매우 환영받는 소식이었습니다. 1915년 12월 1일, 최초의 “진짜” 다리가 개통되었습니다. 이 다리는 폭 12미터의 나무 다리였으며, 회전교로 만들어진 개방형 중앙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다리는 교외 전차의 하중을 견딜 수 있었고, 전차는 이제 호른스툴까지 계속 운행할 수 있었습니다.
교통량 증가와 다리 개방의 어려움으로 인해 새로운 다리가 필요했습니다. 1925년 3월, 스톡홀름 시 의회는 항만청의 제안에 따라 항만청에 새로운 도로 다리를 건설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다리는 평균 해수면에서 약 16미터의 자유 통항 높이와 16미터의 너비로 건설되었으며, 예상 비용은 4,115,000 크로나 (kronor, 스웨덴 통화)였으며, 여기에는 필요한 접근 도로도 포함되었습니다.
릴리에홀름스비켄을 가로지르는 기초 공사는 어려움을 겪었고, 말뚝 (38 x 38 cm 콘크리트 말뚝)을 박기 위해 독일에서 특수한 말뚝 박는 기계 (pålkran)가 도입되었습니다. 기초 공사는 1926년 3월에 시작되었고, 1927년 6월에는 다리의 철 구조물 조립이 시작되었습니다.
릴리에홀름스브론은 스톡홀름의 중요한 교통 인프라의 일부이며, 도시의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릴리에홀름스브론은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스톡홀름의 도시 계획과 교통 인프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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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Liljeholmsbron - 스웨덴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