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Johnny Cash
분류: 미국의 음악가
조니 캐시 (Johnny Cash, 1932년 2월 26일 ~ 2003년 9월 12일)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입니다. 그는 50년 동안 음반을 발표하며 음악적 활동을 이어갔으며, 깊고 독특한 목소리, ‘boom-chicka-boom’ 사운드로 유명한 백밴드 ‘Tennessee Three’, 어두운 의상과 강렬한 무대 매너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The Man in Black)'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죄수들을 위한 공연을 펼치는 등 사회 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조니 캐시는 아칸소주 다이시 (Dyess, Arkansas)에서 성장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면화 농장에서 일하며 노동요를 불렀습니다. 그의 가족은 대공황 시기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음악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복음성가와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어머니와 친구에게 기타를 배우며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초, 조니 캐시는 미국 공군에 입대하여 독일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55년 샘 필립스 (Sam Phillips)가 운영하는 선 레코드 (Sun Records)와 계약을 맺고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제리 리 루이스 (Jerry Lee Lewis), 칼 퍼킨스 (Carl Perkins)와 함께 '밀리언 달러 쿼텟 (Million Dollar Quartet)'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조니 캐시는 “I Walk the Line”, “Folsom Prison Blues”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컨트리 음악계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Tennessee Three’라는 백밴드와 함께 특유의 ‘boom-chicka-boom’ 사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어두운 의상과 강렬한 무대 매너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조니 캐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죄수들의 인권 개선을 옹호하고, 교도소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968년에는 캘리포니아주 폴섬 교도소 (Folsom State Prison)에서 라이브 앨범을 녹음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조니 캐시는 약물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활동에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인 준 카터 캐시 (June Carter Cash)의 헌신적인 도움과 본인의 노력으로 약물 중독에서 벗어났고, 다시 음악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조니 캐시는 말년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톰 페티 (Tom Petty), 닉 케이브 (Nick Cave)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1972년, 조니 캐시는 스웨덴을 방문하여 스톡홀름의 필라델피아 교회 (Filadelfiakyrkan)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이 공연은 당시 보수적인 스웨덴 교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1983년에도 스웨덴 투어를 가졌습니다. 또한, 1973년에는 스웨덴 외스테로커 교도소 (Österåkeranstalten)에서 공연한 실황 앨범 "På Österåker"를 발매했습니다.
조니 캐시는 한국에서 직접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음악은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컨트리 음악을 넘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선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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