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Jerusalem
분류: 이스라엘의 도시
예루살렘 (히브리어: יְרוּשָׁלַיִם, 예루샬라임, 아랍어: القُدس, 알쿠드스)은 지중해와 사해 사이에 위치한 유대 산지에 있는 도시로, 2019년 기준 약 9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행정 중심지이자 사실상의 수도입니다.
- 위치: 유대 산지, 지중해와 사해 사이
- 인구: 약 90만 명 (2019년)
- 종교적 중요성: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
- 국제적 지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제적으로는 논쟁의 대상
예루살렘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기원전 4000년 이전의 예루살렘 초기 정착지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 이스라엘 왕 다윗 시대 (기원전 1010-970년)에 예루살렘은 여부스인 (가나안 민족)이 거주했으며, "여부스"라고 불렸습니다.
- 다윗 왕은 예루살렘을 자신의 왕국의 수도로 삼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설했습니다.
-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남쪽 유다 왕국은 다윗 왕의 후손들이 통치했습니다.
- 기원전 587년,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파괴했으며, 주민들은 바빌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 바빌론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한 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페르시아의 보호 아래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기원전 480년대).
- 66-70년 유대 전쟁 이후,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 132-135년 바르 코흐바의 반란 이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50km 이내 지역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 로마인들은 예루살렘을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라는 로마 도시로 재건했습니다.
- 로마인들은 유대 지역을 이스라엘의 오랜 적이었던 블레셋인들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타인"으로 개명했습니다.
-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지 100년 후, 예루살렘은 옛 이름을 되찾았고, 기독교 주교는 "총대주교"로 승격되었습니다.
최근의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과 같은 초기 왕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고고학적 발견과 여러 외부 텍스트 자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성경적 인물들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행정 중심지이며, 이스라엘 정부 기관, 의회 (크네세트), 대법원, 외무부 등이 위치해 있습니다.
-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로서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입니다.
- 구시가지 (Old City)는 0.9km² 면적에 불과하지만, 성전산, 서쪽 벽 (통곡의 벽), 성묘 교회, 바위 돔, 알아크사 사원 등 많은 종교적 유적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수도로 선언하고 있지만, 국제 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예루살렘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로운 해결을 지지합니다.
한국과 예루살렘은 직접적인 역사적, 문화적 연관성은 적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도시로서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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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Jerusalem - 스웨덴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