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Inter
분류: 이탈리아 축구팀
인터 (Inter), 정식 명칭 **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 (풋볼 클럽 인터나치오날레 밀라노)**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 클럽입니다. 인터는 흔히 흑청색 유니폼을 착용하며, 팬들 사이에서는 ‘네라주리 (Nerazzurri)’ 즉, '흑청군단’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이탈리아 축구 명문 클럽 중 하나로, 20번의 세리에 A 우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유벤투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우승 횟수를 자랑합니다. 또한, 인터는 유럽 챔피언스 리그/유러피언컵에서 3회, UEFA 유로파 리그/UEFA컵에서 3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인터는 1908년 3월 9일, 밀라노 크리켓 앤드 풋볼 클럽 (현재의 AC 밀란)에서 이탈리아인들이 분리되어 창단되었습니다. AC 밀란이 '순수 혈통’의 이탈리아인만 선수로 기용하려는 결정에 반발하여, 인종, 종교, 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린 클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국제적)'라는 이름을 선택했고, 곧 '라 베네아마타 (La Beneamata, 사랑받는)'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인터는 창단 후 1910년에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인터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파시스트 정권의 등장으로 인해 '인테르나치오날레’라는 이름이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름 변경을 강요받았습니다. 1928년, 'l’Internazionale F.C.'는 'l’Unione Sportiva Milanese’와 합병하여, 유니폼과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잠시 'l’Ambrosiana’로 불렸으며, 1930년에는 세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Ambrosiana Inter’로 이름을 변경하여 1942년까지 유지하다가, 원래 이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주세페 메아차 (Giuseppe Meazza)**가 활약했습니다. 메아차는 1930년, 1936년, 1938년 세 차례나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34년과 1938년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79년 메아차의 사망 후, 산 시로 (San Siro) 경기장은 그의 이름을 따서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로 명명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터는 수비적인 전술과 **레나르트 “나카” 스코글룬드 (Lennart “Nacka” Skoglund)**와 헝가리 출신 **스테파노 (Istvàn) 네르스 (Nyers)**를 앞세워 1953년과 1954년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1953/1954 시즌에는 유벤투스를 상대로 홈 경기에서 6-0 대승을 거두며, ‘나카’ 스코글룬드가 두 골을 기록하는 역사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1960년대는 인터의 전성기로, 아르헨티나 출신 엘레니오 에레라 (Helenio Herrera) 감독의 지휘 아래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에레라는 '카테나치오 (catenaccio)'라 불리는 수비 전술을 활용하여, 인터를 1964년과 1965년에 유러피언컵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1964년에는 레알 마드리드를, 1965년에는 홈 구장에서 벤피카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인터는 또한 1964년과 1965년에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1963년, 1965년, 1966년에는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시기 팀의 핵심 공격수는 **알레산드로 마촐라 (Alessandro Mazzola)**였으며, **자친토 파케티 (Giacinto Facchetti)**는 '카테나치오’의 상징이자 팀의 리더였습니다. 이 시기 구단주는 현재 구단주의 아버지인 **안젤로 모라티 (Angelo Moratti)**였습니다. 1967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셀틱에게 패배하고, 리그 우승 경쟁에서도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며, 이 성공적인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1968년에는 안젤로 모라티와 엘레니오 에레라가 팀을 떠났습니다.
그 이후 인터는 1971년과 1980년에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72년에는 유러피언컵 결승에 다시 진출했지만,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에게 0-2로 패했습니다.
스웨덴 축구와 인터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적지만, 스웨덴 출신 선수들이 인터에서 활약한 역사가 있습니다. 특히, 1950년대의 **레나르트 “나카” 스코글룬드 (Lennart “Nacka” Skoglund)**는 인터의 성공에 기여하며, 스웨덴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터는 한국 축구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클럽입니다. 과거에는 유상철 선수가 인터 밀란 입단 제의를 받았다는 루머가 있었고, 최근에는 손흥민 선수의 인터 밀란 이적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터는 한국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 한국 축구 팬들에게 친숙한 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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