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Gammalsvenskby
분류: 우크라이나의 지역
감말스벤스크비 (Gammalsvenskby, 구 스웨덴 마을)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마을로, 18세기 말 스웨덴의 다고 섬 (Dagö, 현재 에스토니아의 히우마 섬)에서 이주해 온 스웨덴인들의 정착지입니다. 이들은 러시아 제국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 (Katarina II)의 허가를 받아 흑해 연안 지역에 정착했지만, 혹독한 환경과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험난한 역사를 보냈습니다.
18세기, 다고 섬의 스웨덴인들은 토지 소유권 분쟁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1781년 8월, 약 1,000명의 다고 섬 주민들은 현재 우크라이나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주를 시작했습니다. 9개월 후인 1782년 5월 1일, 그들은 약 13,000 헥타르의 토지를 할당받아 정착했지만, 이동 과정에서 절반 이상이 추위와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19세기 초, 감말스벤스크비 주변에 독일인 마을들이 생겨나면서 스웨덴인들의 토지를 침범했습니다. 이로 인해 스웨덴인들은 소수 민족으로 전락했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성직자와 교사들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마을은 “감말스벤스크비” (Gammalsvenskby, 옛 스웨덴 마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스웨덴과의 교류가 재개되어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모금된 기금으로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885년 5월 1일에 헌당된 이 교회는 스웨덴인들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감말스벤스크비는 다시 고립되었고, 기근이 발생했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스웨덴계 주민들은 스웨덴으로의 이주를 요청했고, 1929년 8월 1일, 881명의 주민들이 스웨덴으로 이주했습니다.
일부는 스웨덴에 정착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스웨덴 공산당의 지원으로 인해 250여 명이 소련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1932~1933년의 기근 (홀로도모르)과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이 마을을 점령했을 때, 스웨덴계 주민들은 해방자로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의 후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폴란드로 강제 이주되었고, 종전 후에는 소련 당국에 의해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감말스벤스크비는 스웨덴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스웨덴인들이 타국에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 그리고 스웨덴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또한, 스웨덴 정부와 국민들이 해외에 거주하는 스웨덴계 주민들을 지원하고 돕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감말스벤스크비는 한국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해외 이주민들의 정착과 고난,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 유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도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역사적 격변 속에서도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 했던 스웨덴계 주민들의 이야기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는 스웨덴어 위키백과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동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