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Gais
분류: 스웨덴 축구 클럽
GAIS (예테보리 육상 및 스포츠 클럽, Göteborgs Atlet- och Idrotts-Sällskap)는 스웨덴 예테보리를 연고지로 하는 스포츠 클럽입니다. 1894년에 창단되었으며, 축구팀을 비롯하여 풋살팀, 여자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이스하키, 밴디, 핸드볼 팀도 운영했습니다. GAIS는 “Makrillarna” (고등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팀의 녹색과 검은색 줄무늬 유니폼이 고등어의 줄무늬와 흰색 하복부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GAIS는 1894년 3월 11일, 예테보리 바스타스타덴 (Vasastaden)의 에들룬드 카페 (Edlunds konditori)에서 창단되었습니다. 이는 예테보리 최초의 노동자 계급 청년들을 위한 클럽이었습니다. 창립 멤버 중에는 역도 선수인 칼 구스타프손 (Carl “Våran” Gustafsson)이 있었으며, 그는 1895년 회장직을 맡아 클럽을 이끌었습니다. 초기에는 육상, 레슬링, 역도 등의 종목을 운영했습니다.
클럽 내에서는 축구에 대한 시각차가 있었지만, 점차 축구팀이 성장했습니다. 1897년에는 Örgryte IS, Chalmers, Idrottens Vänner과 함께 토너먼트에 참가했지만, 다른 팀들이 불참하여 Örgryte IS와의 결승전에서 패배했습니다. 이후에도 Örgryte IS에 계속 패하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00년에는 클럽 해산 논의가 있었지만, 1901년부터 1903년까지 Gårda SK에 흡수되어 GAIS라는 이름을 유지했습니다.
1909년 악셀 스벤손 (Axel Svensson)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GAIS는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축구팀을 강화하는 데 힘썼고, 1911년에는 현재의 녹색과 검은색 줄무늬 유니폼을 채택했습니다. 1911년에는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1912년에는 Västsvenska 시리즈에서 2위를, 1913년과 1914년에는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15/1916 시즌에는 Djurgården IF와의 친선 경기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시리즈에 초청받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프리돌프 욘손 (Fridolf Jonsson)과 프리티오프 힐렌 (Fritjof Hillén)과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활약했습니다. 1915/1916 시즌에는 스웨덴 시리즈에서 4위를 기록했지만, 같은 도시의 두 팀 이상이 리그에 참가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다음 시즌에는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GAIS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1919년에는 스웨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첫 번째 전국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1922년에도 스웨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1920년부터 1924년까지 스웨덴 시리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27명의 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습니다.
GAIS는 스웨덴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예테보리 지역의 대표적인 클럽 중 하나입니다. 노동자 계급의 청년들을 위한 클럽으로 시작하여, 스웨덴 축구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GAIS는 한국 축구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스웨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 축구 팬들에게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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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Gais - 스웨덴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