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Ericsson
분류: 통신 장비 제조업체
에릭손 (Ericsson)은 스웨덴의 통신 장비 제조업체로, 1876년 라르스 마그누스 에릭손 (Lars Magnus Ericsson, 라르스 마그누스 에릭손)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에릭손은 통신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이동 통신 시스템, 네트워크 장비, 그리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라르스 마그누스 에릭손은 다양한 공장에서 일하며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1876년, 그는 스톡홀름 드로트닝가탄 (Drottninggatan) 15번지에 13제곱미터 규모의 작업장을 열고 수학 및 물리학 기기를 제작했습니다. 같은 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Alexander Graham Bell)이 전화기에 대한 특허를 받았지만, 에릭손은 곧 전화기 제조에 집중하게 됩니다.
1878년, 에릭손은 직접 제작한 22대의 "자석 전화기"를 판매하며 본격적으로 전화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기술력은 곧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았고, 1884년에는 더 큰 규모의 공장으로 이전했습니다.
1896년, 에릭손은 자신의 공장을 "Aktiebolaget L. M. Ericsson & Co"라는 새로운 회사에 넘기고, 100만 크로나의 자본금을 확보했습니다. 그는 1900년까지 최고 경영자 (Verkställande direktör, 베르크스텔란데 디렉퇴르)로, 1901년까지 회장으로 재직하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1890년대에 에릭손은 약 500명의 직원을 고용했으며, 1897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설립하며 국제 시장으로 진출했습니다. 이후 모스크바, 뉴욕, 영국, 미국 등지에 지사를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1918년, 에릭손은 스톡홀름 일반 전화 주식회사 (Stockholms Allmänna Telefonaktiebolag, 스톡홀름스 알메나 텔레폰악티에볼라게트)와 합병하여 "Allmänna Telefonaktiebolaget L.M. Ericsson"으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이 합병은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생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1926년에는 "Telefonaktiebolaget L M Ericsson"으로 사명을 다시 변경했습니다.
1910년대에는 자동 전화 교환 기술 개발에 착수하여, 1923년 로테르담, 1924년 스톡홀름에서 500-선택기 (500-väljaren, 500-벨리에렌)를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이는 에릭손이 교환 분야에서 강점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8년부터는 스웨덴 통신청 (Televerket, 텔레베르케트)과 협력하여 제품 개발을 진행했으며, 1956년에는 연구 개발 (FoU, 포르스킹 오크 우트베클링)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에릭손은 스웨덴 경제와 기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업입니다. 스웨덴의 혁신적인 기술력을 대표하며, 통신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유지해 왔습니다. 에릭손은 스웨덴의 고용 창출에도 기여했으며, 스웨덴의 기술 강국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에릭손은 한국의 통신 시장에도 진출하여, 이동 통신 시스템 및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통신 기술 발전에 기여했으며, 한국의 주요 통신 사업자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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