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Elfenbenskusten
분류: 서아프리카 국가
코트디부아르 (Côte d’Ivoire, 엘펜벤스쿠스텐)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공화국입니다. 대서양에 면해 있으며, 부르키나파소 (Burkina Faso), 가나 (Ghana), 기니 (Guinea), 라이베리아 (Liberia), 말리 (Mali)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1983년부터 공식 수도는 야무수크로 (Yamoussoukro)이지만, 경제 및 산업의 중심지이자 대부분의 외국 대사관이 위치한 곳은 옛 수도 아비장 (Abidjan)입니다.
코트디부아르라는 국명은 15세기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이 지역에 도착하여 상아 (elfenben, 엘펜벤)가 풍부한 것을 보고 무역에 활용하면서 유래되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국가명칭 혼란 (Ivory Coast, Elfenbeinküste, Ivoorkust, Costa de Marfil, Côte d’Ivoire, Elfenbenskusten 등)을 줄이기 위해, 1985년 10월 정부는 모든 언어에서 "Côte d’Ivoire"를 사용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 요청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스웨덴 (Sverige)과 핀란드 (Finland)에서는 여전히 "Elfenbenskusten"이 공식 명칭으로 사용됩니다. 스웨덴에서는 코트디부아르 국민을 "ivorianer"라고 부릅니다.
코트디부아르 지역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로마 제국 시대에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역 상인들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단 제국 중 가장 초기에 등장한 가나 제국 (Ghanariket)은 300년대부터 1200년대까지 현재 모리타니 (Mauretanien) 동부 지역에서 번성했습니다. 가나 제국의 쇠퇴 후에는 말리 제국 (Maliriket)이 강력한 이슬람 제국으로 성장하여 1300년대 초에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1300년대부터 1500년대까지는 송가이 제국 (Songhairiket)이 이 지역에서 번성했습니다. 1700년대 초에는 줄라족 (juulafolket)이 북중부 지역에 이슬람 콩 왕국 (Kongriket)을 세웠습니다.
유럽인들이 서아프리카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은 포르투갈인들이었습니다. 포르투갈 항해자들은 1400년대 말에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1483년에 서아프리카에 처음으로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령 세네갈 (franska Senegal)에 첫 번째 서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인 생 루이 (Saint-Louis)가 1600년대 중반에 건설되었고, 네덜란드인들은 다카르 (Dakar) 근처의 고레 섬 (Île de Gorée)을 프랑스에 넘겨주었습니다.
1840년대에 프랑스는 내륙 지역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부족들의 오랜 무장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코트디부아르는 1893년 3월 10일 루이-구스타브 빙거 (Louis-Gustave Binger)에 의해 공식적으로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으며, 그는 초대 총독이 되었습니다. 내륙에서의 마지막 저항은 1900년대까지 진압되지 않았습니다. 식민 통치 하에서 철도, 항만 등 인프라가 건설되었으며, 목재, 팜유, 카카오 등을 수탈하고 수출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의 초대 대통령이 된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Félix Houphouët-Boigny)는 1944년 유럽인들의 특권에 반대하는 정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치 투쟁을 통해 프랑스 식민지에서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1946년에는 코트디부아르 민주당 (Elfenbenskustens demokratiska parti)을 결성했습니다. 1958년에는 프랑스 공동체 (Franska samväldet) 내에서 자치권을 얻었고, 1960년에는 독립을 달성했으며, 민족 운동의 지도자였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독립 초기에 코트디부아르는 수출 상품 가격 상승으로 경제적 호황을 누렸지만, 민주적 권리는 제한적이었습니다. 펠릭스 우푸에부아니는 1993년 사망할 때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했습니다.
1999년 12월 25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2000년 10월, 로랑 G바그보 (Laurent Gbagbo)가 군부 지도자 로베르 구에이 (Robert Guéï)를 대신하여 대통령이 되었고, 군사 정권은 10개월 만에 종식되었습니다.
2002년 9월, G바그보 대통령의 반대 세력은 쿠데타를 시도했습니다. 이 시도는 1990-1993년 총리였던 알라산 우아타라 (Alassane Ouattara)가 부르키나파소 출신이라는 이유로 1995년과 200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된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쿠데타 시도는 내전으로 이어졌고, 국토는 사실상 두 부분으로 분할되었습니다. 반군 세력은 북부 지역을 장악했고, G바그보 대통령은 남부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정치인들이 민족적 긴장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2007년, 양측은 반군에게 장관직을 부여하는 등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북부 지역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회복하지 못했고, G바그보와 반군 지도자 간의 긴장은 계속되었습니다. 평화 협정에서 합의된 대통령 선거는 여러 차례 연기되었지만, 결국 2010년에 치러졌습니다. 프랑스와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군대가 평화를 유지하고 평화 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2020년 10월, 알라산 우아타라 대통령은 세 번째 임기를 위해 재선되었으며, 이 선거는 혼란으로 얼룩졌습니다.
[[File:Côte d’Ivoire-carte.png|thumb|left|코트디부아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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