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Edgar Mannheimer
분류: 저널리스트
에드가르 만하임 (Edgar Mannheimer, 1904년 4월 20일 ~ 1965년 4월 9일)은 스웨덴의 소아과 의사이자 심장 전문의로, "유럽 소아 심장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의학 연구와 임상 실천에 헌신했으며, 특히 선천성 심장 질환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에티오피아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에드가르 만하임은 1904년 4월 20일 예테보리 (Göteborg)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23년 학생 시험을 통과하고, 1927년 웁살라 대학교 (Uppsala universitet)에서 의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32년에는 카롤린스카 연구소 (Karolinska institutet)에서 의학 면허를 취득했으며, 1940년에는 논문 "Calibrated phonocardiography and electro-cardiography. A clinical study of normal children and children with congenital heart disease"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만하임은 1941년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소아과 강사가 되었고, 이후 카롤린스카 병원 (Karolinska sjukhuset)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1955년 출판된 "Diagnosis of congenital heart disease. A clinical and technical study by the Cardiologic Team of the Pediatric Clinic, Karolinska Hospital, Stockholm"의 저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에티오피아에서 스웨덴 국제 개발 협력청 (Sida)의 지원을 받아 하일레 셀라시에 1세 대학교 (Haile Selassie I University) 병원의 의료 책임자로 활동했습니다. 1964년에는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에드가르 만하임은 1965년 우간다의 캄팔라 (Kampala)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소아 당뇨병 전문가인 잉베 라르손 (Yngve Larsson)이 그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에드가르 만하임은 스웨덴의 명문가인 만하임 가문 (Mannheimer)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오토 만하임 (Otto Mannheimer)은 정치인이었고, 어머니인 샤를로테 만하임 (Charlotte Mannheimer)은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은 마이트 에릭손 (Majt Ericsson)이었고, 두 딸 보딜 (Bodil, 1935년생)과 수잔네 (Susanne, 1939년생)를 두었습니다. 두 번째 부인은 비베카 폰 에센 (Viveka von Essen)이었고, 오토 (Otto, 1944년생), 요한 (Johan, 1945년생), 에바 (Eva, 1948년생), 아네테 (Anette, 1957년생) 등 네 자녀를 두었습니다.
에드가르 만하임은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의 업적은 전 세계 소아 심장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이는 간접적으로 한국의 소아 심장 질환 치료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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