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Ebba Grön
분류: 스웨덴 펑크 록 밴드
에바 그뢴 (Ebba Grön)은 1970년대 후반 스웨덴 펑크 록 씬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입니다.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강렬한 음악으로 스웨덴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83년 해체 이후에도 스웨덴 음악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에바 그뢴은 스톡홀름의 블로수트 (Blåsut) 지하철역 근처에서 열린 파티에서 결성되었습니다. 밴드는 래그스베드 (Rågsved)에 위치한 청소년 센터 오아센 (Oasen)에서 활동하며, 동명의 음악 협회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1978년 4월 21일, 밴드의 첫 싱글 "Antirock"을 자체 제작하여 발매했습니다. 1979년에는 첫 정규 앨범 "We’re Only in It for the Drugs"를 발표했습니다.
1981년에는 두 번째 앨범 "Kärlek & uppror"를 발매하여 앨범 차트 5위에 올랐으며, 안데르스 “스트리 테라리에” 셰홀름이 밴드에 합류했습니다. 1982년에는 세 번째 앨범 "Ebba Grön"이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고, 동명의 영화 "Ebba the Movie"가 개봉되어 밴드의 활동을 담았습니다.
에바 그뢴은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유명했는데, 체육 문화를 비판하는 “Mona Tumbas Slim Club”, 왕실과 자라 레안데르 (Zarah Leander)를 비판하는 “Beväpna er” 등의 곡을 발표했습니다. 1980년에는 정부로부터 음악 그룹 지원금을 받았으나, 펑크가 주류 문화로 편입되었다는 비판과 함께, 반(反) 마약 단체로부터 마약 옹호 혐의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1983년 2월 21일, 에바 그뢴은 "우상"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해체했습니다. 밴드 멤버들은 이후 림딤페리에트 (Rymdimperiet)를 결성하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에바 그뢴은 스웨덴 펑크 록 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밴드의 음악은 당시 스웨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저항 정신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에바 그뢴은 한국에서 직접적인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펑크 록 음악을 좋아하는 한국 팬들에게는 스웨덴 펑크 록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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