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Carl Milles
분류: 스웨덴 조각가
칼 밀레스 (Carl Milles, 1875년 6월 23일 ~ 1955년 9월 19일)는 스웨덴의 저명한 조각가입니다. 그는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활동하며, 웅장하고 역동적인 조각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밀레스는 공공 조각, 분수, 기념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작품은 스웨덴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칼 밀레스는 1875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아우구스트 에밀 세바스티안 “밀레” 안데르손 (August Emil Sebastian “Mille” Andersson)은 육군 소령이었고, 어머니인 발보리 알프힐드 마리아 티셀 (Walborg Alfhild Maria Tisell)은 밀레스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밀레스의 여동생 루스 밀레스 (Ruth Milles)는 조각가가 되었고, 이복 형제 에베르트 밀레스 (Evert Milles)는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밀레스는 학교를 일찍 중퇴한 후 목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스톡홀름의 기술학교 (Tekniska skolan)에서 야간 수업을 들으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1895년부터는 정규 학생으로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1897년에는 스웨덴 공예 협회 (Svenska Slöjdföreningen)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파리에서 밀레스는 여러 해 동안 머물며 장식 조각가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에콜 데 보자르 (Ecole des Beaux-Arts)에서 해부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899년에는 파리 살롱 (Salon des artistes français)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했으며,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Exposition Universelle 1900)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파리에서 그는 아버지의 애칭 "밀레"에서 영감을 얻어 성을 밀레스 (Milles)로 변경했습니다.
파리에서 돌아온 밀레스는 독일 뮌헨,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를 여행하며 예술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1902년에는 공모전을 통해 웁살라의 스텐 스투레 기념비 (Sten Sturemonumentet) 제작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두며 조각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03년에는 스톡홀름의 왕립 극장 (Kungliga Dramatiska Teatern)의 장식을 의뢰받아 여러 조각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1904년 밀레스는 뮌헨으로 이주하여 1905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초상화가 올가 그라너 (Olga Granner)와 결혼했습니다. 1906년에는 올가와 함께 스웨덴으로 돌아와 스웨덴 국립 박물관을 위해 구스타브 바사 (Gustav Vasa) 동상의 초판을 제작했습니다. 1908년에는 뢰로스에 밀레스가르덴 (Millesgården)을 건설하여 거주하며 작업했습니다.
1920년부터 1931년까지 밀레스는 스톡홀름 왕립 미술 아카데미 (Kungliga konsthögskolan)의 모델링 교수로 재직하며, 스웨덴 각 도시의 공공 조각 작품을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1929년에는 미국을 처음 방문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1931년에는 아내 올가와 함께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교외의 블룸필드 힐스 (Bloomfield Hills)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크랜브룩 재단 (Cranbrook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 (Cranbrook Academy of Art)에서 조각을 가르치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1945년 밀레스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1936년에는 이미 밀레스가르덴을 스웨덴 국민에게 기증했고, 1945년부터는 매년 여름을 스웨덴에서 보냈습니다. 20년 동안 미국에서 활동한 후, 밀레스 부부는 유럽으로 돌아와 로마에 정착했습니다.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는 밀레스에게 평생 동안 로마의 주택과 작업실을 제공했습니다.
밀레스는 1955년 사망할 때까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설치된 아가니페 분수 (Aganippefontänen)였으며, 캔자스시티에 있는 성 마틴 분수 (Sankt Martinsfontänen)는 그의 사후에 완성되었습니다. 칼 밀레스는 1955년 뢰로스에 있는 밀레스가르덴의 작은 숲 예배당 (Lilla Skogskapellet)에 아내 올가와 함께 묻혔습니다.
칼 밀레스는 스웨덴 조각 예술의 중요한 인물로, 그의 작품은 스웨덴의 공공 공간을 장식하며 스웨덴 문화 유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밀레스가르덴은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자 조각 공원으로, 스웨덴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 중 하나입니다. 그의 작품은 스웨덴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며, 스웨덴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칼 밀레스는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조각 작품은 한국의 미술관이나 공공 장소에서 전시될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의 조각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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