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Buenos Aires
분류: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입니다. 리오 데 라 플라타 (Río de la Plata) 남쪽 해안에 위치하며, 약 31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대도시권 기준으로는 약 1630만 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도시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880년부터 아르헨티나의 수도로 지정되었으며, “좋은 공기” 또는 "좋은 바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536년 스페인 탐험가 페드로 데 멘도사 (Pedro de Mendoza)에 의해 "누에스트라 세뇨라 산타 마리아 델 부엔 아이레 (Nuestra Señora Santa María del Buen Aire, 우리 성모 마리아, 좋은 바람의 성모)"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습니다. 하지만 1541년에 버려졌다가 1580년에 다시 건설되었습니다. 18세기부터 중요한 항구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1776년에는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800년경에는 인구가 5만 명에 달했습니다.
1806년에는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나, 시민들의 저항으로 해방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아르헨티나 독립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10년 5월 25일, 스페인에 나폴레옹 1세가 침략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최초의 독립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독립은 1816년 7월 9일 북부 투쿠만 (Tucumán)에서 선포되었습니다.
독립 후 50년 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지방 간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1853년에는 미국식 헌법이 채택되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연방에서 이탈하여 무력 충돌을 겪었습니다. 결국 1861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연방을 점령하면서 다시 연방에 통합되었습니다.
1862년 바르톨로메 미트레 (Bartolomé Mitre)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70년간의 안정, 민간 정부, 경제 성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경제 중심지는 해안 지역,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동하면서 도시가 급격하게 확장되었습니다. 1880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위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어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농업 수출과 유럽 이민의 유입으로 도시는 완전히 변화했습니다. 넓은 대로와 인상적인 건축물들이 건설되었고, 1913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이 개통되었으며, 1914년에는 인구가 15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도심 인구가 약 300만 명으로 안정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어려움은 주변 지역, 특히 외곽 지역에서 빈곤과 소외를 증가시켰지만, 최근 (2004년)에는 회복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관광객이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분담하고 파타고니아 (Patagonia)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려는 원칙적인 결정이 내려졌지만,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의 경제 중심지이며, 주요 상업 및 산업 중심지입니다. 식품 산업 외에도 섬유, 금속, 종이, 가죽 제품, 고무, 화학 제품, 의약품, 기계, 자동차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합니다. 산업은 교외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provinsen Buenos Aires)로 집중되고 있으며, 도심은 서비스 산업이 주를 이룹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을 "포르테뇨 (porteño)"라고 부르며, 이는 "항구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대규모 이민이 이루어져, 도시의 인구 구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도시에서는 독특한 스페인어 (아르헨티나 스페인어)가 사용되며, 메스티소 (스페인과 원주민 혼혈)를 비롯하여 아랍, 유대인, 아일랜드, 중국, 일본, 한국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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