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Brunnsviken
분류: 스웨덴의 수역
브룬스비켄 (Brunnsviken)은 스웨덴 스톡홀름 (Stockholm)과 솔나 (Solna) 시 경계에 위치한 길이 3.5km, 폭 0.4~0.5km의 석호입니다. 릴라 베르탄 (Lilla Värtan)과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명소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95년부터는 왕립 국립 도시 공원 (Kungliga nationalstadsparken)에 포함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브룬스비켄이라는 이름은 1499년부터 기록되었으며, “brunn” (우물)의 어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viken” (만)은 이 지역이 과거에 발트해의 만이었음을 나타냅니다. 1000년대에는 멜라렌 호수처럼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를 통해 발트해와 연결되었으나, 융기 현상으로 인해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1702년 지도에는 “frisk sjö” (담수)로 표시되어 바다인 "Saltsjön"과 구분되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에 Ålkistan이 건설된 이후 다시 만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8세기, 구스타브 3세 (Gustav III)는 브룬스비켄과 그 주변 지역을 잉글리시 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풍경 건축가 프레드리크 마그누스 파이퍼 (Fredrik Magnus Piper)와 루이 장 데프레 (Louis Jean Desprez)를 고용하여 이 비전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구스타브 3세의 측근들은 브룬스비켄 주변에 토지를 소유하거나 매입하여 하가 공원, 티볼리, 벨레뷰 공원 등을 조성했습니다.
구스타브 3세는 브룬스비켄 자체를 활용하여 여러 척의 왕실 선박을 띄울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중 “Delfinen” (돌고래)과 “Galten” (멧돼지)은 칼스크로나 해군 조선소에서 제작되었으며, “Lyckans tempel” (행복의 사원)이라는 갤리선도 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이 갤리선은 국왕과 측근들이 하가, 벨레뷰, 아르펠트의 빌라 프레스카티 (Villa Frescati) 사이를 이동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1792년 구스타브 3세의 암살로 인해 브룬스비켄과 관련된 모든 계획은 중단되었습니다. 하가 공원의 건설만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브룬스비켄은 스웨덴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장소이지만, 한국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현재까지는 특별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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