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Bohuslän
분류: 보후슬렌
보후슬렌 (Bohuslän)은 스웨덴 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스웨덴의 가장 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카게라크 해협 (Skagerrak)과 카테가트 해협 (Kattegatt)에 접해 있으며, 아름다운 해안선과 험준한 암석 지형으로 유명합니다. 역사적으로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스웨덴에 귀속되었으며, 풍부한 어업 자원과 독특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스웨덴 내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지역입니다.
보후슬렌이라는 이름은 지역 내에 위치한 보후스 요새 (Bohus fästning)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요새는 노르드레 엘브 (Nordre älv) 강에 있는 섬에 세워졌으며, 요새의 이름은 다시 ‘Bágaholmr’ (현재의 Fästningsholmen)라는 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Bohus-'는 고대 서노르드어 ‘bágr’ (방해, 난관)에서 유래되었으며, 노르드레 엘브 강이 항해에 어려움을 주는 지형이었음을 나타냅니다. '-hus’는 '성, 요새’를 의미합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보후슬렌이라는 이름은 1200년대에 'Bágastraumr’로 불렸던 노르드레 엘브 강 (요새 남쪽)의 급류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bágha’ (흐르다, 넘쳐흐르다)라는 고대 서노르드어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보후슬렌이라는 명칭은 140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지역 남부만을 지칭했으나 점차 북부 지역인 비켄 (Viken)과 란리케 (Ranrike)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어로는 'Båhuslen’이라고 불립니다.
아이슬란드 사가 (Islänningasagor)와 고대 북유럽 문학 (Fornaldarsagor)에서는 보후슬렌과 외스트폴 (Østfold)을 묶어 'Alvhemmen’이라고 불렀습니다. 노르웨이 왕 하랄 1세 (Harald Hårfager)는 870년경, 스웨덴에 조공을 바치던 지역 영주 흐라네 (Hrane)로부터 이 지역을 정복하여 노르웨이 왕국에 편입시켰습니다.
1349년경에는 흑사병이 보후슬렌 지역을 휩쓸어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고, 많은 농가가 파괴되었습니다. 1300년대와 1400년대에는 기온이 낮아 인구 증가가 둔화되었으며, 농업은 1600년대에 이르러서야 회복되었습니다.
칼마르 동맹 해체 후, 보후슬렌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658년 로스킬레 조약 (Freden i Roskilde)을 통해 스웨덴에 할양되었습니다.
보후슬렌의 역사는 청어 어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보후슬렌에서 기록된 8번의 주요 청어 어획기입니다.
1556년부터 1588년까지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2세 (Fredrik II)는 세금과 관세를 통해 어업을 규제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매년 500,000~800,000 배럴의 청어가 어획되었습니다.
1700년대 후반에는 대규모 청어 어획기 (1747년–1808년)로 인해 번영을 누렸습니다. 많은 어촌 마을이 성장했으며, 주택과 배를 짓는 데 필요한 목재, 어업 산업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숲이 대거 벌채되어 현재의 암석 지형이 형성되었습니다. 1900년대 초에는 내륙 지역에 숲이 다시 조성되었으며, 1800년대와 1900년대에는 석재 산업도 발달했습니다.
보후슬렌은 서쪽으로는 스카게라크 해협과 카테가트 해협에 접해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예타 강 (Göta älv)을 경계로 베스테르예틀란드와, 북쪽으로는 이데피요르덴 (Idefjorden)을 경계로 노르웨이와 접합니다. 북부 지역은 동쪽으로 달스란드와 경계를 이루며, 남쪽의 히싱엔은 보후슬렌과 베스테르예틀란드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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